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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작은거인' 알파 이동재회장
관리자 조회수:443 210.221.116.138
2004-01-08 14:10:39
온유한 표정뒤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예지력, 아버지처럼 형님처럼 다정하지만 때로 벼락같은 불호령으로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사람. 작은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무궁무진해 '소(小)짜이안(작은거인)'이라 불리는 알파의 아버지 이동재 회장.

좌중을 휘어잡는 천부적 달변가인 그에게서 알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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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문구프랜차이즈의 선두기업 '알파'를 이끌어 가는 이동재 회장의 집무실은 의외로 지하에 있었다. 전국 250개 지점을 거느린 내실 있는 알짜기업으로 소문난 만큼 번듯한 건물과 회장실을 갖추고 있을 거란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동재 회장은 언뜻 별 특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작은 키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조용한 목소리, CEO라면 으레 갖고 있을 법한 카리스마나 권위, 위엄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특별히 돋보이는 점이라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화술 정도일까. 하지만 대화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자신만이 갖고있는 열정과 매력을 십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겉치레와 불필요한 과대포장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잘난 척, 아는 척, 가진 척 목에 힘주는 스타일은 질색이며 소리만 요란한 빈깡통은 더더욱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의 마음을 주고 상대의 마음을 가져오고 싶어한다. 진실된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면 그 관계는 평생 함께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직과 성실, 부지런함으로 지금의 알파를 일궈낸 사람다운 일면이며 이같은 인간관계가 오늘의 알파를 만드는데 주춧돌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회장의 성격을 잘 알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30년째 사용하고 있는 전화번호다.

1971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전화 놓을 돈이 없어 옆집 전화를 빌려 사용했는데 그 번호가 바로 지금까지 사용하는 0096 번이었다.

"돈이 준비되자마자 전화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그 번호를 샀습니다. 당시에는 전화 번호를 사고 팔 수 있었거든요. 그 번호를 아직까지 쓰는 이유요? 늘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있겠다는 알파의 보이지 않는 약속입니다. 고객에 대한 배려기도 하지요. 0096번으로 거래하던 오랜 고객들에게 굳이 새 전화번호를 외우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자신보다 다른 이의 입장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일이 우선이다.

기업가로서 경영자로서 또 맨손으로 시작해 성공한 자수성가형 CEO로서 조금은 우쭐할 만도 하건만 누구에게나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나를 낮춰 상대의 마음을 얻는' 그만의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00 회사 00부장과 00 회사 00과장이 비즈니스로 만났다고 가정합시다. 오로지 일로만 연결돼 있다면 둘 중 하나가 회사를 그만 둘 때 둘의 관계도 끝납니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사람의 정을 쌓으면 절대 그런 일은 없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또 어떤 회사로 옮기든 다시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서로 도와주게 됩니다. "

사람 좋아하고 사람을 잘 믿으며 자신의 마음을 잘 주는 그가 지금까지 믿었던 사람에게 크게 뒤통수 맞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사람 보는 눈을 타고난 모양이다.



서울역 세브란스 빌딩에서 시작한 30년 '문구인생'

고향인 전라도 남원에서 이동재 회장은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전교 부회장을 했고 6학년때는 전교 회장이 되어 우스개소리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 어디 그 뿐인가. 남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웅변이었는데 생각 외로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전북대회는 물론 크고 작은 대회마다 참가해 상을 휩쓸었다.

공부 잘하던 이 꼬마 웅변가는 그 시절 성적 좋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서울로 유학을 왔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대신 회사에서 사회경험을 쌓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것도 처음부터 '문구'로 말이다.

왜 하필 문구였냐고 물었더니 '그걸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문구는 소모품이니까 팔리고 안 팔리는 기복이 심하지 않을 것 같았고 학교가 없어지지 않는 한 꾸준한 수요층이 확보된다는 단순한 계산 아래 덜컥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출발이었지만 스물다섯 패기만만한 젊은이에겐 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서울역 세브란스 빌딩 구석진 자리에서 맨손으로 문구 소매점 일을 시작했다. 큰 돈 벌겠다는 무리한 욕심은 일찌감치 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해나가기로 했다.

어디서 알게된 사람이든 금세 내 사람으로 만드는 그의 재주는 하루가 다르게 거래선을 확장시켰고 창업 10년만에 남대문에 대형도매점을 오픈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 이 회장은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알파에 대한 홍보를 하는 동시에 디자인·설계용품 등 전문용품 중심으로 상품에 대한 독자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을 파는 곳'. 이것이 그가 생각한 알파의 이미지였다. 그의 계산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언제부턴가 신학기에는 가게 앞에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서너 줄 씩 줄을 선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그들은 유행가 가사처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를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반복한 노력의 결정체였고 형체를 보이지 않던 '성공'이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다.

끈끈한 인맥을 바탕으로 한 알파의 성공은 기초공사가 튼튼한 건물과 같아서 별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해 나갔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그의 눈에 함께 고생한 직원들이 보였다. 박스를 나르고 주문을 접수하고 배송을 나가면서 한 번도 싫은 얼굴 한 적이 없는 성실한 그들에게 뭔가 보답해줄 길이 없을까. 그는 몇 날을 고민했다.

"어느날 출근길에 문득 '사장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생을 같이 한 직원들에게 지점을 하나씩 맡기면 손님들은 굳이 남대문까지 오지 않아도 집 가까운 알파에서 본점과 똑 같은 물건을 살 수 있어서 좋고 직원들은 사장이 되니까 좋은 일 아닙니까. 일석이조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일 테죠"

프랜차이즈란 용어도 개념도 없던 시절, 그저 단순히 회사의 이익을 함께 나누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한 알파 지점은 지금 현재 250개를 넘어서고 있다.





10년만 더 일하고 은퇴해 '문구 박물관' 세우겠다

흔한 말로 회사가 제법 잘나간다 싶으면 이 분야 저 분야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국내 기업문화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이동재 회장은 미련할 정도로 문구만을 고집하고 있다.

기업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경영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 많이 벌겠다는 욕심이 없는데 굳이 여기 저기 뛰어들어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서다.

"알파를 전문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무슨 사업확장이냐"고 손을 내젓는 그는 "큰 돈 벌어 재벌 되고 싶은 욕심도 없고 무리하게 빚 내서 사업확장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딱 잘라 말한다.

돈 욕심 대신 그는 일 욕심, 사람 욕심, 공부 욕심을 타고 난 모양이다.

아침 8시 출근과 동시에 하루 스케줄을 정하고 나면 이회장의 알파 지점 순회가 시작된다.

이제 좀 편히 일 할만도 한데 어려운 일은 없는지 손수 체크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저녁이면 사람을 만나느라 바쁘다. 사는 얘기, 일 얘기 나누다보면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늘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도 틈틈히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회장 이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두 권은 꼭 읽으려고 노력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바로 경영공부 같다는 그는 "CEO의 자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서 "경제, 문화,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안목이 있어야만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가질 수 있고 그 예지력을 바탕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벤츠나 BMW같은 좋은 차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운전자가 초보라면 그 차가 제 기능을 발휘할까요? 차에 대해 잘 아는 능숙한 운전자가 차를 운전할 때 차도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입니다. 회사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CEO의 감각과 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는 최근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쇼핑몰의 문을 열었고 A.S.T라는 새 브랜드를 만들었다.

온라인 쇼핑몰은 인터넷 시장을 개척하고 확장하겠다는 의지고 A.S.T는 파카, 몽블랑 등 해외 명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이다.

2005년까지 600개 지점, 2010년에는 1000개 지점을 만드는 것이 이동재 회장의 목표다. 해외지사 설립도 계획에 포함돼 있다.

늘 그래왔듯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계획을 이뤄나가려고 한다. 지금의 성장속도라면 아마 10년 안에 목표를 이룰 것 같다.

10년 뒤 전국 방방곡곡 골목마다 알파의 노란 간판 1000개가 반짝이는 날 그는 은퇴를 할 생각이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그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싶어서다.

"30년동안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결근한 적이 없으니까요. 정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10년쯤 더 일하고 나면 미련 없이 은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기회도 주고싶고."

일 밖에 모르던 이회장이 은퇴한 뒤에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궁금했다. 물었더니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문구박물관을 낼 것"이란다.

역시 소짜이안 다운 계획이다. 그 꿈을 위해 벌써부터 하나 둘씩 박물관에 진열할 물건을 수집하고 있다.

그가 입구를 열고 보여주는 가방 속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필기용품 들이 들어있었다. 자식 다루듯 소중하게 닦고 쳐다보면서 빨리 많은 문구를 수집해 박물관 만들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다는 그는 뜬금없이 "샤프 한 개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냉장고 개발비 보다 더 비싸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30년 문구쟁이 다운 질문이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더니 0.5mm 샤프심을 부러지지 않고 쓰게 하려면 극히 미세하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데 그 개발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고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 채 '샤프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불평만 하니 답답하단다.

이렇듯 하루 24시간 문구 생각만 하는 사람이 결혼은 어떻게 했을까?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할건 다 한다"고 했다. "나 집에 가면 좋은 남편이에요. 밖에서 힘든 일 짜증나는 일 있어도 집에서는 내색 안 합니다. 일과 가정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남자죠." 처음으로 하는 자기자랑이다.

슬하의 1남2녀는 모두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간다. 물고기를 손에 쥐어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필요한 물품은 직접 돈을 주고 매장에서 사는 사람. 회사는 내 것이 아닌 직원들의 것이라는 사람.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보다 함께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 그 이동재 회장이 있기에 알파는 뿌리깊은 나무처럼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글 연용호 편집국장 사진 홍덕선 사진팀장

月刊<창업&프랜차이즈> 편집국 www.bizho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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