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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놀부 - 김순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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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8 14:20:38
축적된 경험은 누구도 못 훔친다
놀부의 ‘현장경영+지식경영’

(주)놀부 김순진 대표
놀부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브랜드의 하나로 꼽힌다. 전국 340개 놀부 가맹점에서 하루 10만 고객이 놀부 음식을 즐긴다. 돈으로 따지면 하루 1000만원어치 음식이다. 놀부 김순진 사장은 5평짜리 보쌈집을 이렇게 키워냈다.


놀부를 찾아간 10월 8일, 서울 서초 양재 놀부 본사에서는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놀부지식경영위원회’ 미팅이 진행됐다. 이 모임은 자기 업무와 관련한 분야별 특정지식에 관심이 있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학습 동아리. 2003년 첫 미팅인 이 날에는 대구사업소 가맹점주 백서(白書)팀이 놀부 가맹점주 백태(百態)를, 본사 계미고수(鷄味高手)팀이 신브랜드 개발을 위한 맛있는 닭요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놀부의 이 ‘지식경영’ 경연대회(사례 발표)는 2004년 1월 7일까지 월 2회, 총 6회 진행될 예정이다. 고객 서비스와 품질 개발이라는 테마 아래 프랜차이즈 연구팀, 홍보 PR 연구팀, 성공식당 사례연구팀, 수익관리/수익원가 연구팀, 식당 인테리어팀, 외식 마케팅팀 등이 팀별 5명 안팎으로 짜여져 있다. 2002년 시작된 놀부의 지식경영은 직원 직무 능력 향상-직원 지식 창출/공유-회사 성과 제고로 이어져 가맹점주와 소비자의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놀부 전략기획실 고경진 차장의 한마디가 명쾌하다.
“회사 노하우는요, 직원들 머릿속에 있습니다.”

▶ 김순진 사장의 석사 학위 논문 제목은 ‘외식산업 서비스 품질이 고객만족에 미치는 영향’. 그이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계에 “현장을 경험한 이론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님만이 희망이다
놀부(nolboo.co.kr) 김순진(1952년생) 사장은 마침내 자신의 세 가지 꿈을 다 이뤘다.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낸다, 석사 학위를 받는다, 최고 식당을 만든다는 꿈.
1987년, 김사장은 서울 신림동 신림극장 뒷골목에 보쌈식당 ‘골목집’을 열었다. 보증금 300만원에 5평짜리 가게. 백반집, 돼지갈비집, 곰장어집… 세 차례에 걸친 음식장사에서 연이어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마련한 식당이었다. 가난 덕에 중학 1년을 중퇴한 그이는, 자식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만 했다. 벌어서 최상의 교육을 시켜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망할 짓만 했어요. 왜 망했나 역산을 해보고, 어떻게 해야 안 망할까 대안을 내보면서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습니다. 그게 오늘날 놀부의 교과서, 지침서가 됐지요. 고객의 소중함도 그때 알았습니다. 쌀은 떨어지고 월세는 밀리고… 신림동 순대시장 골목에 넘쳐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되는데, 저 사람들을 손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안절부절했지요. 손님만이 희망이었어요. 그 절절함이 고객을 섬길 줄 알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98년 방영된 MBC-TV ‘성공시대’는 맛있는 보쌈김치를 만들기 위한 김순진 사장의 줄기찬 노력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담아냈다. 배, 마늘, 참기름 등속을 각기 다르게 버무려 넣은 1번, 2번, 3번, 4번 바가지를 죽 늘어 놓고 맛 보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던 김사장의 진지한 모습…. 문을 열고 일 주일, 사람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런 빛깔에 연하고 담백한 돼지고기, 1인분 2,500원의 저렴한 가격, 배추와 속을 따로 내는 새로움, 커다란 그릇에 된장국을 퍼 담아준 것이 먹혀든 것. 당시만 해도 보쌈집 손님 대부분은 힘겨운 노동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소주 한 잔을 거저 대접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별것 아닌지 몰라도, 식당이 그저 ‘먹는 장사’로 여겨지던 그 시절에는 상당한 서비스였다. “사흘을 안 먹으면 눈 앞에 빙빙 보쌈이 돈다”는 단골들이 늘어났다. 큰 생굴이 나올라치면, 김사장은 단골이 누구인가? 둘러보며 단골을 챙겼다.
장사 다섯 달 만에 김사장은 가게를 12평 규모로 키운다. 하지만 아무리 잘됐다 한들 5평 식당에서 5개월간 얼마나 벌었을까. 식당을 넓히는 데 들어간 돈은 전 가게 월세 보증금이었다. 가진 것 전부를 걸었던 것이다. 자신이 있었다. 이때 ‘놀부보쌈’이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 놀부보쌈은 승승장구, 40평 식당으로 자라났다. 2층에 위치한 가게였지만 역시 자신있었다. 더욱 열심히 뛰었다. 굴 하나 고기 한 점을 더 얹어주며 2층까지 올라와준 대가를 지불했다. 먹던 고기가 남으면 김치까지 쥐어 보냈다. 일하는 아줌마 머리카락이 음식에 빠질까봐 일하는 아줌마도 김사장도 모두들 ‘쇼트 커트’를 했다. 김순진 사장의 머리는 지금까지도 쇼트 스타일이다.
“발목이 퉁퉁 붓고 아랫도리가 주저앉을 정도로 일했습니다. 자식은 친정에 맡기고, 식당 바닥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애를 보면 환장할 노릇이었지요. 자식에게도 감사하고 있어요. 지금은 서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서 키워줬다는 걸 고마워해요.”

▶ 김사장은 식당을 차리고 나서 머리카락이 음식에 빠질까봐 ‘쇼트 커트’를 했다. 김순진 사장의 머리는 지금도 쇼트 스타일이다.
▶ 김사장은 항상 멀리 보고 늘상 한 발 앞서 왔다. 부대찌개, 솥뚜껑삼겹살, 유황오리진흙구이, 순대국 등 새로운 메뉴를 속속 선보이며 외식시장을 개척했다. ‘100년의 맛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놀부의 마음이다.

제때 다 찾아 먹어가며 일할 수 있나
놀부 프랜차이즈는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주변 어려운 사람들이 가맹점을 내달라고 한 것이다. 89년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가맹 1호점이 들어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양도, 맛도, 가격도 본점과 달랐던 것. 이익을 쫓느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김사장은 아차 싶었다. 약정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 일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가맹점의 시설과 관리를 체계적으로 챙겨 나갔다. 놀부 프랜차이즈는 무엇보다 보쌈 조리법을 매뉴얼화했기에 가능했다. 어느 정도 세기의 불에 어떤 부위의 고기를 넣어 얼마 동안 뜸을 들여 무엇을 넣어 조리하는지, 그 방법을 표준화시킨 것이다. 놀부 조리기술서에는 “계절에 따라 바람(수분)이 들어간 정도가 다른 무의 탈수 시간과 그에 따른 채칼의 쓰임새가 밀리미터 단위로 적혀 있다”고 한다. 처음 한식 매뉴얼화를 시도하고 성공시킨 것만 봐도 김순진 사장의 안목과 집념을 가늠할 수 있다.
김사장은 항상 멀리 보고 늘상 한 발 앞서 왔다. 1991년에 가맹점 수가 22개로 늘어나 서울 공장으로는 역부족이던 91년 공장 부지를 물색할 때의 일. 충북 음성에 반듯하게 다듬어진 1,000평 땅이 있었다. 하지만 그이는 주변에서 그만이라던 그 땅을 제껴 두고 2,000평 임야와 산을 매입해 공장을 지었다. 가맹점이 340개를 넘은 지금까지도 놀부 물류가 원활히 돌아가는 것, 놀부가 여타 외식 프랜차이즈보다 먼저 전국망을 갖출 수 있던 것도 이 음성공장 덕분이다. 김사장은 “음성공장은 10년 후를 내다보고 지은 것”이라고 했다. 또 놀부는 부대찌개, 솥뚜껑삼겹살, 시골상차림 놀부집, 유황오리진흙구이, 순대국 전문점 등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며 지속적으로 외식시장을 개척했다.
“지난 16년 동안 3년 주기로 히트 상품이 나왔습니다. 놀부가 새 아이템을 만들어 놓으면,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지방 소도시까지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래요. 경쟁사회니 어쩌겠어요. 놀부만의 강점을 더욱 강화하고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지요. 식습관 변화는 쉽지 않지만, 요즘 젊은 고객들의 변화는 참 빨라요. 그러니 상품 개발뿐이지요. ‘100년의 맛을 디자인한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놀부의 지식경영은 매일경제&부즈 앨런 ‘지식경영대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맺었다. 놀부의 지식경영은 가맹점주와 소비자의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미친 듯 달리다 보니 커 있더라
“순환의 법칙이라 할까요, 뿌린 만큼, 베푼 만큼 되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김순진 사장은 ‘나눔의 미학’을 믿고 실천한다. 누구보다 가난을 잘 알기에, 가난한 이들에게는 작은 도움도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1989년 KBS 상점경영수기 공모에서 금상을 받자 강연 요청이 쏟아졌다. 김사장은 89년부터 여성개발원 창업강좌와 위생교육원(한국음식업중앙회 부설)의 식당경영사례 강사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그이는 이러한 강연 활동으로 받은 강사료를 ‘놀부장학회’라는 이름으로 적립, 점포 근무 직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고, 99년부터는 매년 ‘놀부 외식논문 현상공모’를 통해 보다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1년에는 ‘사랑의 봉사단’을 설립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이웃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김사장은 1만여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상록회’ 총재이기도 하다. 1970년 결성된 상록회는 자연보호 운동, 수재민 돕기 등을 벌이는 전국 규모 민간 단체다.
김순진 사장의 향학열 또한 남다르다. 겨우 초등학교를 마친 자의 배움에 대한 갈급함이기도 했겠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그이에게는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겼다. 영어와 한자가 뒤섞인 직원들의 보고자료를 해독할 수 없어 난감했던 것. “특히 90년대 초반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전문인력들이 제출한 보고서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고 한다. 마흔을 훌쩍 넘긴 김사장은 그러나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96년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패스한 그이는 97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 우송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올해 경원대학교 대학원 관광경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사장은 같은 학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석사가 되겠다는 소망을 이뤘습니다. 박사과정은 보너스라고 생각해요. 1인 몇 역을 하면서,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쥐어짜며 살았습니다. 저는 전진하는 스타일입니다. 스스로 도전하면서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자세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벼랑에 선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행동으로 쌓은 경험은 누구도 훔쳐가지 못해요.”
이런 CEO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직원들에게 자극제가 될 터이다. 직원들 스스로들 자기개발의 텃밭을 가꾸게 만들었고, 놀부는 자연스레 지식경영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CEO가 추구하는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발굴, 공유하고 신속히 경영에 반영하는’ 현장 중심 경영을 직원들 또한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김순진 사장이 말하는 놀부 지식경영의 요체는 “본사가 가맹점 경험을 미리한다”는 것. “가맹점 장단점을 분석함으로써 내부의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놀부의 지식경영은 매일경제&부즈 앨런 ‘지식경영대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누가 시켰나요? 자기들 스스로도 대견해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들에게서 희망을 봤어요. 그걸 보는 사장은 힘이 솟지요. 일등 기업은 누가 만드나요? 직원을 일등으로 만들면 됩니다. 제가 할 일은 그겁니다.”
김순진 사장은 지금 세계 진출을 다지고 있다. 놀부는 90년대 초부터 말레이시아 등지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올해 말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세계화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 유수 브랜드의 각축장이 된 국내 외식시장에서 그들과 경쟁을 벌이고 국내 시장을 지켜내는 것도 의미롭지만, 이제는 보다 큰 좀더 큰 파이를 찾아 나설 때라는 것이다. ‘문화사업가’를 자처하는 김사장은 그것을 ‘음식문화전쟁’이라 부르면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의 개발 여지에 따라 무한 성장이 가능한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지난 9월 27일, 김순진 사장은 ‘21세기 여성 CEO 연합’ 회장으로 취임했다. ‘21세기 여성 CEO 연합’은 여성 경영인들의 정보 교류와 역할 증대를 위해 창립된 단체. 김사장은 앞으로 이 단체의 활동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여성의 감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앞으로 여성 경영자들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커지고 활동 영역 또한 넓어질 것입니다. ‘21세기 여성 CEO 연합’은 교육과 연수 등 여성 경영자들이 경영지식을 교류, 공유하고 그것을 일선 경영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겁니다.”

글 연용호 편집국장 사진 홍덕선 사진팀장
月刊<창업&프랜차이즈> 편집국 www.bizho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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