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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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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9 14:27:48


 
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남 죽이려 애쓰지 말고
나 살리는 데
힘써야지


‘장충동왕족발’ 가맹점주로 시작해 지사장, 가맹본부장을 거쳐 최고경영자에 오른 신신자 대표.
‘장충동왕족발’을 국내 최대 족발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키워낸 신대표의 성공학은, 시원시원하다.
연용호 편집국장
chief@bizhouse.co.kr | 홍덕선 사진팀장 elvis@bizho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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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왕족발은 지난해 ‘1588-3300’ 단일 전화번호로 전국 133개 가맹점을 묶었다. 홈페이지 주소도 아예
‘1588-3300.co.kr’로 바꾸었다. 전국 어디서나 ‘1588-3300’을 누르면 발신지와 가장 가까운 가맹점점으로 자동 연결된다. 이는
물론 고객에게 보다 신속하게 주문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지만, 신신자(1954년생) 사장은 더 나아가 “소비자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 소비자들이 유사상호 업체에 족발을 주문했다가 클레임을 거는 등의 피해 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법인명을 ‘하나식품’에서 브랜드와 같은 ‘장충동왕족발’로 변경한 것도 유사상호가 하도 많기 때문. 유사상호는 전국 3000개
이상으로 짐작된다.
대전에 본사를 둔 장충동왕족발은 지난 2월 서울에서 대대적인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가맹점 개설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도권 지역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참이다. 신대표는 “서울의 경우 1개구에 1개점씩 가맹점을 줄 계획”이라며, “수도권 지역 물류유통을 위해
850평 규모의 신갈물류기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최근 부쩍 주가가 오른 개그맨 정준하, 문천식을 모델로 기용해 TV-CF도 시작했다. ‘꼭
1588-3300으로 주문하세요. 전화 잘못 걸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거에요.’ 종로(유사상호)에서 뺨 맞고 한강(장충동왕족발)에서
화풀이하지 마시라는 말씀이다.


바보짓 그만하고 제품개발에 매달려라
src="http://www.bizhouse.co.kr/download/040401_07.gif" align=center vspace=8>“무슨
무슨 장충동왕족발이라고, ‘장충동왕족발’ 앞에 뭐라고 붙어 있는 상호는 모두 가짜라고 보시면 됩니다. 모방요? 오래 못 가요. 식품은 말이지요,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유통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될 수가 없어요. 생산공장을 갖춘 본사가 완제품을 제조,
공급하는 것 말입니다. 그건 모방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단시일에 돈벌이를 꿈꾼다고 돈이 벌립니까? 외식업은 특히 그래요. 연구하고
개발하고,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면, 반드시 좋은 제품이 탄생합니다.”
신신자 사장은 지난해 4월 ‘지사장 쿠데타’를 겪었다. 3명의
지사장이 뭉쳐 유사상호(장충동 B&F) 업체를 차린 것이다. 가맹점 3분의 1이 떨어져나갔다. 신생 회사인 그들이 앞세운 구호는
얼토당토않게도 ‘20년 전통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그들은 몇 달 못 가 문을 닫았다. 자꾸 클레임이 걸려
하루에도 몇 번씩 환불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니만,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대응조차 부끄러워 그냥 놔뒀습니다. 나중에 그들 말이,
정말 쉽지 않습디다 하더군요. 점주들도 거의 돌아왔어요.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다시 받아줬습니다. 회사는 6개월 만에 정상
회복됐습니다. 전화위복 아니겠어요? 위기를 겪으며 새 각오를 다졌습니다. 잘 만들면 고객이 안 떠난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했고, 고객에 대한
감사함도 더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고객 권리를 지키는 것도 사업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경쟁력과 고객 감사함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니,
위기가 기회가 된 셈 아닌가요? 상대를 죽이기보다 우리의 자생력을 기르자는 철학도 그때 생겨났습니다.”
신사장은 남이 만들어 놓은 걸
고대로 베끼려고 헛수고 하지 말고 나만의 제품을 개발하라고 누누이 말했다. 그리고 고객을 속이지 말라고, 고객 무서운 줄 모르면 끝장이라고
덧붙였다. 그 자신 그 길을 걸어왔기에 할 수 있는 얘기다.
“3월 눈사태 때, 이틀간 장사를 못했어도, 냉동족은 절대 안
팔았습니다.”


고객은 판매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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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왕족발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개 붙는다. 최초 ‘장충동’ 상호 사용(91년 장충동왕족발 상표등록),
최초 ‘장족발’ 판매, 최초 족발 ‘프랜차이즈’, 최초 족발 ‘주문배달’, 최초 ‘종이 포장재’ 사용, 동종업계 최초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 인증···.
1984년 창업주 한봉수 씨가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 ‘장충(匠忠)족발’이라는 상호로 족발 장사를 시작했다.
한씨는 그 전까지 돼지 발목까지만 절단해 만들던 ‘미니족발’에서 벗어나 무릎까지 절단해 조리하는 ‘장족발(왕족발)’을 개발했는데, 이게 이른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6가지 한약재를 넣어 삶아도 냄새가 남아 있지 않고 쫄깃 담백한 ‘무취무향’ 족발을 만들어낸 것이다. 배달 시작
사연은 이렇다. 한 단골 노인이 ‘족발을 먹고 싶어도 몸이 아파 가게로 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자 배달을 해준 것이 오늘날 배달전문점으로
성장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소비자 건강을 위해 스티로폼 포장용기를 가격이 네 배나 비싼 종이로 바꾼 때는 2002년. 올해부터는 “종이 포장을
쓰지 않는 가맹점에는 제품 공급을 안 한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신신자 사장은 장충동왕족발 가맹점을 운영하다 본사를 인수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96년, 남편의 건설회사가 부도를 막지 못해 전재산을 날렸다. 남매를 키우던 주부 신신자는 이듬해 97년 대전에서
부산으로 건너가 장충동왕족발 동래점을 차렸다. “대전 바닥에서는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는 줄곧 가맹점 최고 매출을 달렸다. 그러던
어느 하루, 장충동왕족발 가맹점이 없는 영도에서 전화주문이 왔다. 신사장은 동래에서 한 시간 거리인 영도까지 배달 가기가 벅차, 가장 가까운
하단점에 대신 배달을 부탁했다는데···.
“그런데, 그러마고 약속한 하단점에서 약속을 어긴 겁니다. 족발 장사는 비 오는 날이 대목인데,
그 날 비가 와서 그랬는지···. 아무튼, 거리 따지고 이익 따지다 보면, 배달 못 갑니다. 그 날 밤 늦게 손님의 항의 전화를 받고, 다음날
아침 족발을 들고 찾아가 배달이 안된 전후 사정을 말씀 드렸어요. 돈은 물론 받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본사 사장(한봉수)은 신신자
점주를 눈여겨보게 됐다. 그이의 정성에 감동한 손님이 본사에 제보를 했던 것. 신사장은 바로 부산지사장을 거쳐 가맹본부장에 발탁되더니 2001년
1월, 본사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한때 잃었던 대전 최고 요지 건물을 되찾아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장의 행동은
직원에게 전염된다

“점주 시절 최고 매출을 올린 비결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IMF 때 오히려 많이 팔았어요. 당시
물가가 폭등해 상추 한 박스에 7만원이나 했는데, 소비자는 그럴수록 오히려 더 달라 하지요. 원가 계산 하지 말자, 소비자가 요구하기 전에 미리
주자 마음먹고 서비스 했어요. 다른 곳은 양을 줄일 때 배로 늘렸습니다. 내 돈벌이를 위해 연 가게, 말 그대로 왕 대접을 해주고 있는가?
반문해 보니까 답이 나오더라구요.”
신신자 사장은 ‘신뢰받는 식품회사’를 쌓아왔다고 자부한다. 지난 연말에는 원재료인 생족(生足)이 달려
70%밖에 공급을 못하는 바람에 가맹점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하지만 신사장은 점주들에게 “질이 낮으면 팔지 마라” 했다. “없다고 하면
다시 찾지만, 한 번 안 좋은 걸 먹어본 사람은 외면”하는 게 소비자라는 존재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작년 내내 무가 얼마나
비쌌습니까? 한 차에 500만원씩, 두 차 1000만원어치를 그냥 폐기 처분한 일이 있습니다. 맘에 안 들어서 말이지요.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니까···. 이런 것이 기업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보다 교육 효과가 큰 것, 그것이 문화입니다. 직원들에게 1000만원짜리 교육을
시킨 셈이지요. 사장 행동은 직원들에게 전염됩니다. ‘품질로 고객을 만난다’는 것을 저도 한봉수 씨에게서 배웠어요. 직원들부터 우리 회사의
마니아가 되고, 그렇게 되면 협력업체들 또한 우리를 신뢰하게 돼요. 당장 손해보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면, 결국 이익을 봅니다.”

신신자 사장은 “장충동왕족발 가맹점을 해서 피해 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큰 보람”이라고 했다. “지난 20년간 한 번도 매출이 떨어진
적 없다”면서 “건물이 팔려 딱 하나 접은 가맹점 말고는 폐점한 점포가 정말로 없다”고 했다. 장충동왕족발은 9년째 소비자가를 동결하고 있고,
그 흔한 세일행사 한 번 안 하고 있다. 대단한 고집이요 배짱이다.


나를 위해 노력하니 내가 대가를
받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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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신신자 사장은 한국갤럽에 ‘족발 상표 인식에 관한 조사’를 의뢰했다. 제법
비용이들지만, 장충동왕족발의 브랜드 인지도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갤럽 측은 “삼성전자도 75% 수준”이라면서 “수치가 낮게 나오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고 했단다. 그런데 먼저 놀란 쪽은 갤럽, 84.94%라는 높은 인지도가 확인된 때문이다. 장충동왕족발 브랜드 파워는 그만큼
세다. 연이어 KT를 통해 조사한 결과 장충동왕족발을 ‘주 1회 먹는 사람이 전체 고객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충동왕족발 마니아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점포 운영시간이 낮부터 새벽까지로, 육체적으로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40이 넘은 사람들에게는
가맹점을 잘 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나이를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껏 너무 많은 것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드려야지요.
실직가장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잖아요···. 마인드만 갖춘 분이라면 누구라도 동반자로 모시려 합니다. 다만, 외식업 창업 실패 사례도 많다는 걸
아셨으면 해요. 간판과 주인만 바뀐 채
개업하는 곳이 많아요. 뭐든지 적당히 하면 깨지게 마련입니다. 강한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
다짐하고 창업에 나서야 합니다.”
신신자 사장은 직원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감이었다.
“저, 사치
부리지 않아요. 그것은 경영에 앞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검소한 모습을 보이고, 대화를 통해 그들과 연대감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경쟁력 아니겠어요? 자본은 제가 다 댔고, 책임도 제가 다 지지만, 저도 임직원 75명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업을 하는 한 회사
식구들을 가장 먼저 챙기려 합니다. 이제는 자신 있어요, 저희들은 도약할 겁니다.”


신신자 사장의 경영철학

경쟁업체를 쓰러뜨리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기 자신을 강화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 제일주의(Number One)의 독보성을 찾아야 한다.
독자적인 전문성(Only One)을 찾아야 한다.
●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기업문화를 키우자. 미래에 대비한 생산성을 기르자.

구조조정을 하기 전에 먼저 경쟁력부터 키우자. 언제인가 위험이 닥쳤을 때 안일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대상이 되는 당사자의 아픔도 크려니와
남아 있는 자의 상실감이 더 클 것이다.
● 교육은 모방효과가 느리다. 지도자가 실천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전염이 된다는 것을 항상
상기하자.
● 한번 길러진 능력은 절대로 남의 것이 되지 않는다. 일단 능력이 길러지면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 책임감만 있으면 동기부여나 변화의 문제는 그대로 녹아 없어지게 된다. 도약하는 당시는 깨닫지
못했으나 나중에 보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된다. 혁명과정을 거쳐서가 아니라 책임감 있는 그대로가 도약이기
때문이다.

月刊<창업&프랜차이즈> www.bizho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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